홍종현, 2022 에세이문학 여름호 사고실험/

사고실험/홍종현

그릇을 깨면 나쁜 일이 생긴다. 과학적 근거 없는 추측이나 주장은 불신하는 편이지만 이상하게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시작은 언제였을까. 30년 전쯤? 부주의로 유리잔을 깬 다음 날 동생이 지원한 대학으로부터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신입 과학교사 시절 실험실에서 비커가 깨져버린 것과 작은 화재 사고가 잇따라 일어나 ‘깨어난다’는 동사와 ‘재수가 없다’는 형용사는 마치 쌍둥이 별처럼 두 사람이지만 하나로 겹쳐 보이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뭔가를 어겼지만 아무 일 없이 극복한 적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은 집요하게 나쁜 일이 생긴 경우에만 기록하고 있었다. 불길한 징조라는 각인은 비슷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더 깊이 뇌에 뿌리를 뻗어나갔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징크스는 보란 듯이 나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무슨 시험이 그렇게 많은지 학교 내신을 비롯해 각종 대회와 자격시험까지 학기뿐 아니라 방학 때도 줄줄이 시험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침착하지 못하고, 덜렁거려서 항상 여기저기 부딪혀서 무언가를 잘 흘리고, 무언가를 잘 놓친다. 설상가상으로 때마침 찾아온 손가락 퇴행성 관절염. 어떤 물체를 손으로 꽉 잡으려면 전보다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아들의 중요한 일에 불길한 징조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설거지는 초집중 작업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아들의 기말고사 전에 나는 설거지를 하고 접시를 깨버렸다. 그릇을 놓칠까 봐 고무장갑도 끼지 않고 조심스럽게 닦다가 순간 접시가 손가락에서 미끄러져 싱크대 바닥에 툭 부딪힌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기숙사에 있는 아들에게 휴대전화 문자가 왔다. “엄마, 물 2시험을 보느라 배가 아프고 진땀까지 흘리며 문제를 풀어 망쳤어요.” 그 일로 나는 징크스에게 모든 주도권을 빼앗긴 노예가 되고 말았다. 설거지 중에 그릇끼리 조금만 닿아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마치 신생아를 다루듯 그릇을 만졌다. 이는 미신이고 불안은 그저 심리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제어가 되지 않았다. 워낙 예민한 기질이어서 불안감은 증폭됐고 그때 이성은 바람난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더 조심해야 했다. 그 방법밖에 없었다.

조심스럽게 물건을 다루는 것은 스트레스가 되었다. 스트레스는 차곡차곡 쌓였고 어느 순간 임계점에 이르자 화가 났다. 이거 뭐 하는 줄 알았어. 내 뇌는 어리석게도 그릇을 부수는 것은 불길하다는 보편적 미신을 우연히 일어난 경험에 맞춰 절대적 신뢰로 둔갑시켜 나를 조종하고 있었다. 스스로 불안이라는 지옥에 가두고 있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만둬야 했다. 앞서 말했듯이 이성적 논리로 반박하는 것은 헛수고였다. 심장은 이성과는 별도로 움직였다. 경험이 새긴 뇌내 회로를 바꾸는 방법은 역시 경험뿐이었다. 그렇다면 징크스에 반하는 경험을 쌓아 뒤집을 수밖에 없었다. 그릇이 깨져도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경험을 쌓아 뇌회로를 다시 새기는 것이다. 방법은 하나. 매일 접시를 깨면 된다. 징크스에 따르면 매일 그릇을 깨뜨렸으니 매일 나쁜 일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그럴 리가 없다. 확실히 아니다. 매일 그릇이 깨지든 아니든 일상은 일상적으로 흘러갈 것이다. 따라서 나의 징크스는 백기를 들고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내 그릇을 깨뜨릴 수 없었다. 요리를 못하는데 그릇은 좋아해서 잠깐 미국에 살 때 한인 주부 사이트의 할인 정보를 매일 주시하며 조금씩 50%, 70% 할인된 가격에 모은 그릇이다. 나의 소중한 빌보(빌레로이앤보흐라는 독일 브랜드)를 어떻게 깬단 말인가. 매일 접시를 깨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때 사고실험(thoughtexperiment)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고 실험은 머리로 설계하고 실행하는 실험이다. 실험하기 어려운 조건이나 장치를 상상 속에서 설계하고 실험하는 것이다. 앞서 중학교 과학 교과서에 소개됐던 갈릴레이의 관성의 법칙 실험이 대표적이다. 갈릴레이는 마찰이 없는 레일로 공을 굴리면 외력이 작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원히 굴러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마찰 없는 레일이 필요한데 그런 레일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갈릴레이는 처음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상실험에서 이 현상을 설명했다. 거시적 또는 미시적 현상을 다루는 현대 물리에서 사고 실험은 더 자주 등장한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사고실험을 종종 이용했고 물리학자 슈뢰딩거가 말한 그 유명한 ‘슈뢰딩거 고양이 실험’ 역시 사고실험이다. 그래서 나도 사고 실험으로 매일 접시를 깨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상상으로 매일 접시를 깨뜨렸다. 역시 접시를 깨뜨렸다고 나쁜 일만 일어나지 않았다. 비록 상상이었지만 뇌는 그것을 충분한 경험으로 받아들였고 갈라짐과 불운의 연결고리는 완전히 풀렸다. 설거지는 이제 운을 점칠 시간이 아니었다. 그릇을 닦는 행위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설거지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징크스는 사라졌지만 그릇을 부드럽게 다룬다. 남편이나 아들이 그릇을 바닥에 세게 놓으면 혼난다. 공들여 사들인 나의 ‘빌보’들은 소중하니까.

『에세이 문학』2022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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