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8200만 명 봤다…로맨스 포르노에 빠진 여성들
전 세계 여성을 사로잡은 19금 로맨스 소설 원작 넷플릭스 드라마 ‘블리자톤’
드라마 ‘블리자톤’에서 블리자톤가 8남매 중 넷째이자 장녀인 다프네(피비 디네버) / 넷플릭스 손호영 기자입력 2021.02.0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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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자톤의 주인공 헤이스팅스 공작(레지 장 페이지)./ 넷플릭스 #1. 모든 가문이 탐내는 런던 사교계 최고의 신랑 후보 헤이스팅스 공작. 많은 여성이 그에게 매달리는 것은 단순히 그의 신분 때문만은 아니다. 선이 굵은 얼굴, 복싱 선수에 버금가는 탄탄한 가슴, 셔츠 아래로 울퉁불퉁하게 드러난 굵은 팔, 남모를 슬픔을 간직한 깊은 눈까지. 이렇게 매력적인 그가 하필이면…비혼주의자다.
#2 비좁은 파티장을 떠나 혼자 마당을 걷고 있던 공작. 어디선가 들려오는 날카로운 비명을 듣는다. 급히 달려보니 자신을 괴롭힌 늙은 변태 얼굴에 주먹을 날린 우리의 당당한 여주인공, 여왕이 인정한 사교계 최고의 신부 ‘다프네’다. 여성들의 구애에서 벗어나고 싶은 공작은 궁지에 몰린 다프네의 약점을 잡고 계약연애를 제안하는데.
3. “남편과 아내가 밤에 무슨 일을 하나요?” 궁금해 죽겠다. 쾌락에 무지한 그에게 공작은 조언한다. 밤에 혼자 있을 때 몸을 만져보라. 특히 기분 좋은 어떤 곳을…” 다프네의 순진한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서서히 기쁨을 아는 몸이 되어가는 다프네, 계약 연애인 줄 알면서도 자꾸 공작의 맨살과 근육에 눈길이 간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로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공작은 “더 이상 당신을 타락시킬 수 없다”며 다프네를 떠날 것을 다짐한다.
/ 넷플릭스 19세기 영국 리젠시 시대(1811~1820)를 배경으로 하는 클리셰 밴벅의 로맨스 ‘블리자톤’이 넷플릭스 역대 시청기록 1위를 갈아치웠다. 개봉 후 28일간 8200만 계정으로 시청해 1위였던 위처(7600만)를 넘어섰다. 8200만은 독일 터키 인구와 맞먹는 숫자다. 83개국 ‘TOP10’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해 일본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순위 안에 들었다. 개봉 한 달이 지난 6일 기준까지만 해도 국내 순위는 6위. 당당하게 추천하기에는 꽤 안면이 있는 드라마지만 2030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공개한 지 한 달도 안 돼 시즌2 제작이 확정됐다.
영국 런던의 블리자턴가 8남매 이야기를 그린 사극이다. 순진하고 아름다운 귀족 딸과 상처를 간직한 지위가 높은 공작의 계약 연애 이야기. 그레이 아나토미, 범죄 재구성(Howtogetaway with murder) 등을 제작한 션다 라임스가 넷플릭스로 이적해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하버드대를 나온 미국 작가 줄리아 퀸의 베스트셀러 로맨스 소설이 원작. 29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이 소설은 출간 18년 만에 다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주인공 다프네가 의문의 여성 레디 휘슬다운이 발행한 사교계 가십지를 읽는 모습./넷플릭스◇’그레이…’365일’의 순한 맛, 포르노에 빠진 여성들보다 더 허술한 스토리다. 가슴을 한껏 모아 신랑감을 찾는 이야기라 요즘 시대 여성상과도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데는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의 성인 로맨스라는 점이 한몫했다. ‘365일’이나 ‘회색의 50가지 그림자’ 등 ’19금’ 콘텐츠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끄는 현상이 여기에서도 반영됐다. 모두 여성의 시선으로 관능을 묘사한 여성용 포르노에서 블리자턴은 개중에는 얇은 편이다.
지난해 개봉한 폴란드 로맨스 영화 ‘365일’은 2020년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여러 더러운 장면은 숨기고 음악과 아름다운 풍경을 곁들여 심리적 장벽을 없앴다. “미아가 된 거야, 베이비걸?” 네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안 해.” “365일의 시간을 줄게. 그때까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당신은 자유다」건강한 여자가 자신을 납치한 범죄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로, 중반부터는 베드신만 자꾸 나오는 포르노다. 로튼 토마토 평론가의 점수는 0점이다. 그럼에도 속편 제작까지 확정했다.
야한 것은 누구나 좋아하지 않을까. 그래도 요즘 유행하는 것은 좀 다르다. 여성의 몸과 표정을 주로 비추는 기존 음란물과 달리 여성의 시선에서 남성의 표정과 몸 구석구석을 비춘다. 직접적 묘사보다는 은유와 은밀함을 즐기는 여성들의 취향이 반영됐다. 약간의 작품성도 필요하다. 과장할 게 아니라 넷플릭스나 왓챠에 나오는 정도면 된다. 주변의 외로운 기혼자를 찾아주는 등 각종 더러운 팝업이나 VPN 우회 애플리케이션 없이 TV만 켜면 된다는 점도 장점이다.
폴란드 영화 365일에서 주인공 마피아 보스 역을 맡은 배우 미켈레 모로네(왼쪽)와 드라마 블리자톤의 주인공 헤이스팅스 공작의 스푼 팬 페이지./ 인스타그램 캡처
드라마 블리자톤에서 주인공 헤이스팅스 공작이 숟가락을 핥는 장면. 팬들 사이에서 밈(meme)으로 발전했다./ 넷플릭스 블리자톤의 카메라는 남자 주인공의 근육을 천천히 노골적으로 보이게 해 성적 매력을 극대화한다. 극 중반부터는 부부 관계에 무지했던 순진한 주인공이 자신의 욕망에 눈을 뜨는 장면을 주요하게 그렸다. 특히 남녀 주인공이 결혼해 신혼생활을 하는 5~6회는 이런 장면이 집약된 소프트 포르노 장르로 보인다.
해외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숟가락을 핥는 장면이 큰 인기를 끌면서 밈(meme)이 됐다. 공작 숟가락 인스타그램 팬페이지(@thedukesspoon)까지 생겼다. 최근 넷플릭스가 공개한 ‘엄마주의’ 안내서도 화제가 됐다. 부모님과 함께 볼 때 주의할 장면을 분초 단위로 안내했는데 혼자 있을 때 그 부분만 골라보라는 뜻이다.
/넷플릭스◇그래도 ’19금’은 아니다
19금 장면만으로 인기 요인을 설명하기엔 억울할 정도로 공을 들인 드라마다. ‘오만과 편견’ ‘다운튼 애비’ 외에 제인 오스틴풍의 사극 로맨스를 좋아한다면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의상과 미술은 역대 넷플릭스 오리지널 중 최고 수준이다. 8개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10차례 무도회를 위해 의상만 7500벌을 만들었다. 화려한 드레스와 꽃장식, 궁전과 저택에서 펼쳐지는 로맨틱한 로맨스 덕분에 특별한 스토리 없이도 눈이 즐겁다.
OST도 귀를 사로잡는다. 마룬5의 ‘girlslikeyou’ 빌리 아일리시의 ‘badguy’ 아리아나 그란데의 ‘Thank U, next’ 숀 멘데스의 ‘In my blood’ 등을 스트링 편곡해 밀레니얼 귀에 익숙하다.
드라마 블리자톤을 위해 제작된 7500벌의 드레스./ 넷플릭스 페미니즘과 비혼주의가 화제가 됐던 시대. 결혼을 고집하는 이 드라마에 2030 여성들이 열광하는 것은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다.
여성의 시선과 쾌락에 초점을 맞춘 섹스 신에서 이 드라마의 목적의식이 느껴진다. 임신을 위한 모든 과정을 모른 채 결혼한 주인공은 신혼생활 한 달이 지나서야 아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깨닫는다. 남편인 공작은 이를 이용해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여성을 성에 무지한 상태로 방치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여성을 통제하는 방식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결혼을 거부하고 남자 형제처럼 대학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여동생 캐릭터도 등장한다. “왜 여자의 선택권은 와글와글 정착하거나 둥지에 남을 뿐이지?” 내가 날고 싶다면? 여자가 책을 많이 읽는 것조차 욕설이 됐던 시절, 독서와 글쓰기를 즐기며 혼자 힘으로 삶과 행복을 개척해 나가려는 인물이다.사교계의 가십지를 발행하는 수수께끼의 여성 「레이디 휘슬다운」의 존재도 흥미롭다. 누가 쓰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귀족과 여왕까지 모두 읽는 이 신문, 펜 하나로 사교계를 주름잡는 ‘레이디 휘슬다운’은 애로우즈처럼 꿈이 많은 그 시대 여성들에게는 희망이다.
블리자턴 가문의 다섯 번째 엘로우즈(왼쪽)와 페더링턴 가문의 막내 페넬로페./ 넷플릭스◇”메건” 이전에 진짜 흑인 여왕이 있었다?
포스터 속 ‘흑인 여왕’의 등장은 작품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180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최고의 권위를 가진 샬럿 여왕부터 주인공 헤이스팅스 공작, 그의 보호자인 던베리 부인 등 귀족 신분의 주요 인물 상당수가 유색인종이다. 백인왕이 흑인 여성과 결혼해 사회통합을 이뤄냈다는 설정이다. 왕이 우리(흑인) 중 한 명과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 우리 사회는 피부색으로 분열된 두 사회였다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 때문에 인종 다양성 캐스팅이 대세인 미국에서조차 몰입도를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나왔다. 시대에 관계없이 작품에 유색인종을 무조건 등장시키는 경향을 꼬집어 ‘블랙 워싱’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할리우드 등 주류 영화계에서 무조건 백인 배우를 기용하는 관행인 화이트 워싱에 빗댄 것이다.
드라마 블리자톤의 샬럿 여왕(골드 로셰벨). 최초의 흑인 여왕으로 등장한다./ 넷플릭스 그러나 ‘최초의 흑인 여왕’ 가설은 처음 나온 얘기는 아니다. 공식적으로는 영국의 매건 마클이 첫 흑인 혈통 왕족이지만 일부 역사학자들은 1761년 영국 조지 3세와 결혼한 샬럿 왕비가 아프리카 혈통의 혼혈이라고 주장한다. 샬럿 왕비가 런던에 도착했을 때 총리와 귀족들이 흑백 혼혈의 얼굴 코는 너무 넓고 입술은 너무 두껍다고 했다는 기록도 있다.
[‘영국 왕실 흑백 혼혈’ 메건은 처음이 아니다]
개요 드라마 l 미국 l57~72분·8편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제작 숀다임 스토딩 화려함, 사극, 설렘주의, 로맨스 ☞ 바로보기 클릭
#와칭 #넷플릭스 #OTT
손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