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검은 하늘에 별이 총총한 책 커버를 벗기자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보고 있는 여성의 그림이 있다. 허블 망원경으로 거대한 우주의 신비를 탐색하는 천문학자의 모습 대신 모니터를 바라보는 현실 과학자의 모습. 과장하지 않고 “나 이런 책이야”라고 말하듯 커버부터 정직하다.
이 책은 비정규직 행성 과학자 심채경의 생계의 고단함과 그럼에도 불구불구 타오르는 학문에 대한 지고한 애정이 녹아 있는 에세이다. 게다가 사소한 과학적 지식도 얻을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유니버스, 코스모스, 스페이스라는 단어의 미묘한 차이와 별, 행성, 위성, 혜성과 같은 천문학에서 사용되는 용어 소개도 흥미롭다. 천문학 시작부터 우주에 대한 다양한 지식이 나처럼 과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쉽고 편한 말로 서술된 것은 이 책의 큰 미덕이기도 하다. 또한 여성 과학자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사소한 일상에서 그녀가 ‘대학’이라는 공간에 대해 가진 애정과 연민, 고군분투하는 학생들을 축복하고 응원하는 태도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천문학자가 달이나 별을 본다고 낭만에만 의지해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달과 별을 보기에는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무해하다는 사실에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는 책. 읽기가 피곤한 날 쉬는 책으로 추천한다.
김준혁 작가의 책 제목 ‘뭐든지 될 거야’를 인용해 에필로그에 남긴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이 글이 오늘 나에게 독서일기를 쓰게 했으니까. 오늘 ‘뭐든지’ 했어.^^”무엇이 되려면 무엇이든 해야 하고, 무엇이든 하면 무엇이든 된다고. 인생은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p.270)
★인상 깊은 구절 김영하 작가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에 나오는 연쇄살인범은 “다음 생에는 천문학자나 등대지킴이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소시오패스여서 밤하늘의 훅은 바다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직업을 떠올렸을까. 나도 이 직업을 선택할 때는 천문학자가 사회에 나가는 일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잘 몰랐다. 등대지기 역시 가끔 방송작가의 인터뷰 요청을 받을 것이다. 인터뷰 요청을 받는 등 대지기의 심정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천문학자들의 경우 ‘사회의 호소에 대체로 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천문학을 비롯한 많은 과학 분야가 국민이 낸 소중한 세금에서 연구비를 받고 있으며, 과학계 종사자임을 밝히면 듣는 사람은 대체로 “오~”라는 짧은 감탄사와 함께 이 직업을 존중해준다. 물심양면의 지지를 받으면 보답해야 한다. 물론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히 연구하는 것이 가장 큰 보답이고, 이렇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대중과 소통하는 것도 부수적이면서 중요한 임무다.(p.92)
내 논문과 문제의 인터뷰에 대해 비교적 단순명료한 기사가 수차례 나온 뒤 다른 종류의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천문학을 선택하게 된 극적인 이야기와 업적을 이룬 경험을 공유해 타인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달라는 것인가. 저는 연구과제가 끝나면 급여도 경력도 금방 단절이기 때문에 과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 외에도 먹고살기 위해 다음 연구과제를 수주할 생각에 머리가 복잡하지만, 일년에 몇 번씩 정규직 채용공고에 원서를 내고 탈락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는데 그런 상황이 결코 누군가에게 희망적일 리 없다. 내가 이 직업을 포기하지 않은 채 정규직으로 취업하고 내가 기여한 연구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완수되어 후배 천문학자들의 연구를 도울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야 과거의 고군분투가 무지개빛 희망으로 물들지 않을까 (p.145)